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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의 창시자 문선명 총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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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부고
등록일
2012-09-05 08:24:03
조회수
2466
3일 별세한 문선명 통일교 총재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논쟁적 인물`이었다. 통일교를 창시한 1950년대부터 국내에서 `이단과 사기꾼`이라는 공격을 받았는가 하면, 외국에서는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인이라는 명암이 존재했다. 그는 1976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선정된 `올해의 인물`이기도 했다.


서울 경성상공실무학교를 나온 그는 1941년 일본 와세다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귀국 후 평양에서 전도를 시작했으나 남한 스파이로 몰리며 흥남감옥에 수감됐다. 6ㆍ25전쟁 발발 후 부산으로 피란을 간 그는 그곳에서 전도를 계속했고 1954년 서울 성동구 북학동 한 가정집에서 신흥종교인 통일교를 세웠다.

통일교는 1970~1980년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신도 수는 194개국에서 300만명이 넘는다. 1958년 선교를 시작한 일본의 교세가 가장 크며, 신도는 50만명이다. 국내 신도는 20만명으로 추산된다. 통일교에서 `축복식`이라고 불리는 합동결혼식은 문선명 총재가 직접 미혼자 중에서 결혼할 쌍을 결정해 논란을 빚었다.

문 총재는 생전 여섯 차례나 옥고를 치렀으며 평생 이단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을 `재림 메시아`로 보는 교리 때문에 국내 기독교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다.

그는 자서전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신 것은 하나님의 예정된 뜻이 아니다"며 "만일 그때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였다면 동서양 문화와 종교가 하나가 되는 평화세계를 이루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인은 1990년에는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났으며, 이듬해인 1991년에는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 대북 사업을 논의했다.

그는 김일성을 만난 자리에서 나선 경제무역지대, 금강산관광지구 개발 등 대규모 대북 사업에 투자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 달러에 목말랐던 북한이 거액을 약속한 현대아산과 손잡으면서 통일교의 금강산 개발 꿈은 깨지고 말았다.

고인은 1999년 남북 합작으로 평화자동차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현재 연간 2000여 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며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해 12월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에도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33)이 방북해 조문했다.


장례식은 15일 오전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열린다. 장지는 가평 송산리 천성산. 북측이 조문단을 보내올지 주목된다. 빈소 (031)589-8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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