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의근 보건신문 주간

   
 
   
 
얼마 전 KBS 1TV ‘소비자고발’에서는 의료기관의 일회용 의료기기 재사용 실태를 방영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소비자고발 제작진이 실제로 병·의원에서 주사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해봤더니 일부 의원에서바늘만 바꾼 채 재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떤 의원에서는 간호사들이 사용한 주사기를 버리지 않고 받침대에 따로 모아두어 의료 폐기물함에는 주사바늘만 가득 담겨 있고 주사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다른 의원에서는 주사실에서 발견한 주사기에는 사용 흔적이 있었지만 새 주사기와 섞여 있었다.이는 일회용 주사기가 바늘만 바뀐 채 재사용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어느 간호조무사가 증언한 내용은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주사기 4개를 바늘만 바꿔 환자 200명에게 계속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특히 침을 많이 사용하는 한의원의 경우 더 심각하다. 한번 쓰고 폐기해야 할 침을 소독약에 담가 소독한 후 재사용하고 있어 비위생적인 위험한 침습행위가이뤄지고 있다. 한 한의원에서는 녹색액체의 소독약이 담긴 침 보관통까지 두고 침을 담가두고 있었다. 또 다른 한의원에서는 사용한 장침을 알코올 솜에 꽂아놓고 소독해서 재사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침을 침대바닥에 놔두는한의원도 있었고, 사혈침을 신문지에 놓고 사용하는 한의원도 있었다. 피 묻은 사혈기나 부항을 신문지로 쓱쓱 닦거나 물로 세척해 다른 환자에게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제작진이 이들 한의원에서 사용되는 일회용의료기기 6개를 수거해 위생 상태에 대한 실험을 한 결과 멸균상태라면 아무것도 나오면 안 되는 일회용 의료기기 2개에서 세균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1개 시료에서는 폐렴이나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MRAB)’라는 세균종으로 확인됐다.특히 소비자고발에서는 본지가 지난해 11월 19일 단독 보도한 일산의 침 부작용 사건도 소개했다. 일산에 거주하는 한 여대생이 집근처에 있는 오른쪽 발바닥과 왼쪽 무릎이아파 인근 한의원에서 침과 부항을 시술받았다가 왼쪽 무릎이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오르는 의료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감염 전문가들도 감염 방지를 위해 멸균 포장된 일회용 의료기기(주사기나 침 등)를 재사용할 경우 감염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주사기 자체의 오염 가능성뿐만 아니라 균이 따라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송경애 가톨릭대 간호대 교수는 “한번 사용한 주사기 안에는 이미 체액이나 혈액이 들어와 있기에 절대로 다시 쓸 수 없다”고 강조했고, 정선영 이화의료원 감염관리계장도 “주사기는 일회용 주사기를 사용해야 하며, 사용 직전에 개봉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최근 병·의원이나 한의원에서 일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으로 실제 감염됐다는 소비자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보건당국이 이웃집 불구경하듯 뒷짐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회용 의료기기의 재사용을 금지하거나 재사용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다는 것은 더큰 문제다. 이제 보건당국과 의료인들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의료소비자인 국민들로부터 냉정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허술한 의료기기 관리체계에 대한 개선과 믿고 안심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 제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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