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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소령,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부하들을 구하고 1966년 장렬히 전사하다

2024-08-11     김청월 기자
해군사관학교에 세워진 이인호 소령 동상 (사진출처=해군사관학교)

  이인호 소령은 대한민국 해병대의 군인으로, 1931년 7월 2일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구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해군사관학교 11기로 진학하여 1957년에 졸업하고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1959년 중위, 1961년 대위로 진급하였고, 1964년에는 해병대 제1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근무했다.

이인호 소령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해병대 제2여단(청룡부대)의 제3대대 제5중대 중대장으로 파병되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 중 투이호아 지역에서 수행된 해풍 작전에서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의 용맹한 행동으로 인해 태극무공훈장, 미국 은성훈장, 남베트남 공화국 엽성훈장이 추서되었다. 이인호 소령은 1966년 8월 11일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희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인호 소령은 베트남 전쟁 중 해병대 제2여단(청룡부대)의 대대 정보장교로서 해풍작전에 참가했다. 작전 중 그는 분대 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베트콩의 동굴을 수색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동굴을 수색하던 중, 베트콩이 던진 수류탄이 부하 대원들 옆에 떨어졌고, 이인호 소령은 폭발 직전에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부하들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그의 이러한 희생정신은 전군의 귀감이 되었으며,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이인호 소령이 받은 태극무공훈장과 미국 은성훈장은 그의 용맹한 행동과 희생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태극무공훈장은 대한민국에서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 전투에 참여해 혁혁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이는 무공훈장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주로 전사자에게 추서된다.

미국 은성훈장은 미국 군인에게 수여되는 훈장 중 하나로, 전투 중 용감한 행동을 한 군인에게 주어집니다. 이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높은 전투 관련 훈장이다. 그의 용맹한 행동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정받아 은성훈장이 수여되었다. 이는 국제적으로 그의 희생과 용기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인호 소령의 장례식은 해병대 사령부 광장에서 해병대장으로 거행되었다. 이 장례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김성은 국방부 장관과 홍종철 공보부 장관이 참석했다. 장례식에서 이인호 소령의 미망인 이경자 여사에게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이인호 소령의 전사는 한국 사회와 정치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전사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자 많은 국민들이 애도와 추모의 뜻을 표했다. 이는 그의 희생이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희생정신은 단순히 개인의 희생에 그치지 않고, 전군의 귀감으로 평가되었다. 그의 용맹한 행동은 군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의 희생은 군 내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모교인 해군사관학교와 해군교육사령부에서는 동상을 건립하여 고인을 추모했다. 이는 그의 희생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