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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사상계 창간한 장준하, 1975년 8월 17일 약사봉에서 의문의 등산 사고로 사망하다

2024-08-17     김청월 기자
故 장준하 선생 사진 (사진출처=국가기록원)

  장준하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가, 종교인, 언론인, 사회운동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1918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태어난 장준하는 장로교 목사인 장석인의 아들이었다. 일본 도요대학 예과와 니혼신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1944년 일본군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었다. 중국 쓰저우 지구에 배속된 후 6개월 만에 탈출에 성공하여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에 입대했다. 1945년 1월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도착하여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었고, 미국 전략정보국(OSS)의 특별군사훈련을 받았다. 1945년 12월 김구와 함께 입국한 후, 1952년 『사상』을, 1953년에는 피난지에서 『사상계』로 제호를 변경했다.

장준하는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이로 인해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1966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복역 중 옥중 출마하여 1967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했으며 196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상)을 수상했다.

1975년 8월 17일, 장준하는 경기도 포천시 약사봉에서 의문의 등산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유신정권은 하산 도중 실족사로 발표했으나, 사건 직후부터 타살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 사건은 여전히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장준하의 삶과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그의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 언론인으로서의 업적, 그리고 민주화운동가로서의 노력은 한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장준하는 1945년 2월부터 한국광복군 소위로 복무하며 미국 CIA의 전신인 OSS(전략사무국)활동을 병행했다.OSS에서 3개월간 국내 진공작전에 가담하고 중국 시안(西安)에서 미국 육군 군사교육을 받았다. 국내 밀파 특수공작원으로 대기하던 중 8.15 광복을 맞이했다. 광복 후 장준하는 경교장에서 김구의 비서로 일했다.

사상계는 장준하가 창간한 월간 종합교양지로, 한국의 지성계와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1952년 장준하가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창간하고 1953년 『사상계』로 제호를 변경하여 발행했다. 피난지에서 창간되어 한국 전쟁 직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발행을 이어갔다.

사상계는 당시 한국 지식인들의 주요 논단 역할과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며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했다. 이처럼 사상계는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지로 많은 지식인과 학자들이 기고하며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들을 다루었다. 민주화 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사상계는 1970년 정부의 압력으로 인해 폐간되었으며 이는 당시 권위주의 정권의 언론 탄압을 보여주는 사례다. 장준하의 사상계 창간과 운영은 그의 언론인으로서의 역할과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사상계는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지적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