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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 소련의 민간항공기 격추사건이다

2024-09-03     김청월 기자
사고 3일전 촬영된 대한항공 007편 (사진출처=국립중앙도서관)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은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소속 보잉 747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사건이다. 이 사고로 269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사망했다. 당시 비행기는 뉴욕에서 서울로 향하던 중 소련 영공을 침범했고, 소련 측은 이를 적대 행위로 간주하여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냉전 시기에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후 여러 의문점과 논란을 낳았다

이 사건의 발생 원인은 대한항공 007편이 계획된 항로에서 크게 이탈하여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다. 당시 소련 군은 이 비행기를 미국의 정찰기로 오인하고 격추했다고 한다.1983년은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은 소련의 위협을 강조하며 군사력 증강에 힘썼고, 소련 극동 지역은 미군의 주요 관심 지역이었다. 일부에서는 이 사건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정찰 작전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비행기가 소련 영공을 세 차례 교차 비행하며 소련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과 관제소를 촬영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이 소련의 군사 시설과 방어 체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민간 항공기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는 추측에 불과하며, 공식적으로 인정된 바는 없다.

대한항공 007편의 블랙박스 기록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정보가 있다. 블랙박스 기록에 따르면, 소련 전투기가 발사한 조명탄을 007편이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당시 007편이 고도 상승 중이었기 때문이다. 수사 기록에 따르면, 소련 전투기가 조명탄 4발을 발사했을 때 모두 007편이 상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매우 우연한 일로 간주되었다. 블랙박스 기록은 007편이 소련의 '아납' 미사일에 피격된 후에도 약 4분간(18:31 GMT부터 18:35 GMT까지) 수평 비행을 유지하며 5,000미터를 하강했음을 보여준다. 이 기록은 조종사들이 피격 후에도 비행기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었으며, 착륙 또는 수중 불시착할 장소를 찾으려 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블랙박스 기록은 조종사들이 소련 영공 침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기내 대화에서는 일상적인 대화와 단풍 구경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이러한 블랙박스 기록은 사건의 전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특히 비행기가 계획된 항로에서 크게 벗어났음에도 조종사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과 소련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미국은 소련의 행동을 강력히 비난했고, 이는 냉전 시기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소련은 국제 사회로부터 광범위한 비난을 받았다. 많은 국가들이 소련의 행동을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이라고 규탄했다. 이 사건 이후 민간 항공기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강화되었다. 미국은 이 사건 이후 민간 항공기의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해 GPS 시스템을 민간에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소련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제재를 가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이 사건을 조사하고 향후 유사 사건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격추 사실을 부인하던 소련이 국제 사회의 압박으로 인해 결국 사실을 인정하고 일부 정보를 공개했다. 냉전 종식 이후 소련(러시아)은 그동안 숨겨왔던 007편의 블랙박스를 공개했다.

이 사건은 냉전 시기의 긴장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으며, 민간 항공기의 안전과 국제 항공 규정에 대한 재고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국제 사회의 협력과 투명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269명의 무고한 승객과 승무원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당시의 국제 정세와 군사적 긴장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